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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어떤 찬송이 합당한가?

너희가 예배를 아느냐?

안 재경 목사 | 2013-10-31 오전 9:56:57mail warmer@goscon.co.kr

 찬송- 어떤 찬송이 합당한가?

 

 

예전씨: 예배에서 찬송은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요즘은 교회가 어느 정도 규모만 되면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려고 애를 쓰는 것 같아요. 성가대가 없는 교회가 없고, 성가대의 찬양이 없는 예배도 없지요. 그런데 예배 때 정작 무슨 찬송을 불러야 할 지 진지하게 토론하는 분위기는 없는 것 같아요. 예배의 분위기를 띄울 수 있는 찬송이면 어떤 것이든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네요. 그래서는 안 되지요. 모든 신자들이 같이 아멘으로 화답할 수 있는 찬송을 불러야 하지 않겠어요?

자율씨: 저도 예배 때 찬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절감해요. 그런데 우리가 찬송에 대해 너무 경직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어요. 찬송은 마음에서 우러나와야지요. 자발성이 무엇보다 중요하고요. 찬송가에 있는 찬송뿐만 아니라 소위 말하는 복음송을 많이 도입할 필요가 있어요. 사실 찬송가에 있는 많은 곡들이 19세기 미국대부흥기에 불려진 복음송이 아니었나요? 우리도 우리 정서에 맞는 찬송을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 언제까지 서양의 찬송에 매여 있을 건가요?

 

예전씨: 교회가 자신의 고백을 새롭게 담은 찬송을 만들어내는 것이 왜 문제겠어요? 종교개혁이 예배의 개혁이라고 할 때에 거기에는 찬송의 개혁이 큰 부분을 차지했지요. 성직자들이 독차지했던 찬송을 회중들에게 돌려준 것이 개혁의 큰 기여였지요. 그런데 이제는 성가대라는 것이 만들어져 찬송을 전문가들이 독차지하려는 모습마저 보이려고 해요. 성가대의 역할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에요. 성가대는 회중과 유리되어서는 안 되고 회중의 찬송을 인도해야 된다는 생각을 한시라도 잊지 말아야 해요.

 

자율씨: 성가대의 역할을 너무 무시하면 안 된다고 봅니다. 회중의 찬송은 한계가 있어요. 예배 인도자인 목사가 찬송을 정하는데 그것도 천편일률적이고요. 최근에 시편찬송을 도입하려는 교회들이 있는데 안 그래도 교회가 전근대적이라는 말을 듣고 있는데 종교개혁시대의 곡조로 돌아가는 것이 무슨 유익이 있을지 걱정이 돼요. 성가대에 적극적인 역할을 맡겨서 공연을 한다는 생각으로 예 배찬양을 준비하도록 할 수도 있겠지요. 우리가 언제까지 흘러간 옛 노래를 부르고만 있을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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